허찬희 영덕제일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
허찬희의 정신건강
지금부터 약 30년 전인 1979년 경북 성주군 수륜면에 사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정신질환의 치료 실태에 대해 조사한 적이 있다. 당시 상당히 많은 환자들이 민간요법으로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를 들어 ‘사람이 놀라면 간에 장애가 생겨 정신병이 생긴다’고 생각해 소의 쓸개즙을 먹이는 경우가 많았다. 또 환자를 진정시키기 위해 부적을 쓸 때 쓰는 천연광물의 일종인 붉은색의 경면주사를 돼지 염통에 넣어 끓여 먹이기도 했다. 특이한 요법으로는 복숭아나무에 환자를 묶은 뒤 복숭아나무로 채를 만들어 때리기도 했다. 정신질환을 귀신이 붙은 병이라 생각하고, 귀신이 달라붙지 못하는 복숭아나무를 이용한 민간요법이었다.최근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옷을 벗어 던지며, 집 밖으로 뛰쳐나가 고함을 치는 등 이상행동을 보여 입원치료를 하게 됐다. 그 환자는 조상 귀신이 나타나서 그렇게 하라고 시켜서 그런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한달쯤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증상이 많이 좋아졌고 병원에서 외박도 다녀올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이에 사회적응 훈련을 시작하던 중이었는데, 이 환자의 큰언니가 와서 환자가 조상 귀신에 씌어서 그런 것이니 굿을 해야 낫는다며 예정보다 일찍 퇴원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정신질환에 대한 민간요법은 무당을 빼놓을 수 없다. 인류의 초기 사회인 부족사회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제사와 정치를 함께 담당했다. 즉 부족도 다스리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아픈 사람을 치료하기도 했다. 그 당시 무당은 오늘날의 의사 구실까지 한 것이다. 현대사회에 접어들면서 그 구실을 하는 의사라는 전문직이 생겨났으나 과거 전통이 뒤섞여 내려오면서 민간에서는 무당의 역할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정신질환은 ‘환경적인 원인과 타고난 소인’이 함께 작용하며, ‘마음의 병이면서 또 뇌 질환’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또 대부분의 정신질환 치료에서 망상이나 이상행동 등과 같은 증상은 약 두달 동안 적극적으로 약물 및 정신 치료를 하면 증상이 좋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의학에서 이제 정신질환은 더이상 불치병이 아니다. 증상이 호전된 뒤 만성질환처럼 지속적으로 관리하면 된다. 오늘날 정신병 치료에서 중요한 점은 초기 정신병일 경우 시기를 놓치지 않고 약물 및 정신치료, 가족치료 등 가능한 모든 치료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만성인 경우에는 지속적인 약물치료를 통해 재정적 손실과 인격의 황폐화를 가져오지 않도록 재발을 막아야 한다.
정신과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프로이트도 최면술을 이용해 환자 치료를 시도해 봤지만 그 효과가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찬가지로 무당이 하는 굿을 통해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질환은 고혈압이나 당뇨와 같이 한번에 해결되는 병이 아니라 일생에 걸쳐 꾸준히 관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누에가루 몇 달 먹어서 당뇨를 완치하거나, 굿 몇 차례로 정신질환을 완치시키려는 어리석은 노력은 포기해야 한다. 정신질환도 꾸준히 관리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고 좀더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허찬희 영덕제일병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