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걸에대해

잡담과일상 2011. 5. 28. 02:17



"그는 정말 빠르다. 너무 빨라서 카메라가 그의 동작을 쫓아가기에 벅찰 정도다. 도너 감독이 다소 액션 속도를 줄이라고 주문할 정도였다. 그의 쿵푸(Kung Fu)는 무술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영화배우 멜 깁슨('리셀웨폰 4' 에서 이연걸과 같이 출연 했음)은 이연걸의 액션을 그렇게 평했다.

이름 : 이연걸 (Jet Li)
생년월일 : 1963년 4월 26일
출생지 : 중국 베이징
신장 : 169 cm
체중: 66 kg
별자리 : 황소자리
특기사항 : 세계 무술 대회 5연승
학력사항 : 71~80년, 북경체육운동학교

출연작
1982 소림사
1984 소림사2
1985 소림사3
1988 중화영웅
1989 풍운인물
1991 황비홍
1992 황비홍2, 동방불패
1993 황비홍3, 방세옥, 태극권
1994 이연걸의 보디가드, 이연걸의 정무문
1995 영웅, 탈출
1996 흑협
1998 리쎌웨폰4
2000 로미오 머스트 다이(Romeo Must Die)

무술 경력[Martial Arts Experience]
1971 : 베이징체육학교 졸업 Graduated from Beijing Athletic School (Martial Course)
1974 : 전국체육대회 우승 Gold Champion of Youth National Athletic Competition
1975 : 제3회 중국 무술대회 우승 Gold Champion of the 3rd China Martial Competition
1977 : 전국 무술대회 우승 Gold Champion of the National Martial Competition
1978 : 전국 무술대회 우승 Gold Champion of the National Martial Competition
1979 : 제 4회 중국 무술대회 우승 Gold Champion of the 4th China Martial Competition
1974-79 : 전세계 40개국을 넘는 나라에서 중국 대표로 8차례에 걸쳐 시범활동 Eight times represents China for guest performance over 40 countries including Europe, Asia, America, Africa and Middle East etc.

이소룡 사후, 정통 쿵푸 액션 스타로 전세계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이연걸은 1968년 4월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2살때 아버지를 여읜 이연걸은 홀어머니 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어린 시절 이연걸은 지금의 모습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얌전한 아이였다. 이연걸이 형제 중 가장 어렸기 때문에 이연걸의 어머니는 어떠한 위험한 활동이나 운동도 금지시켰다. 심지어는 자전거 타기조차 금지를 당해 이연걸은 15세가 되기 전까지도 자전거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연걸이 무술을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당시 8살이던 이연걸은 베이징 아마추어 스포츠 스쿨에 입학, 중국 전통 무술 중 하나인 우슈(Wushu)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슈를 연마하던 소년 이연걸은 타고난 운동 신경과 하루 8시간 이상씩 계속된 강훈련으로 실력을 인정받아 10살 때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이듬해인 1974년 제5회 중국 전국 무술대회에 출전한다.

중국 최고 무술인들의 등용문인 이 대회에서 그는 권법, 봉술, 검술 등 3개 부분을 석권. 대회사상 최연소 우승 기록을 세워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어 그는 1979년까지 각종 무술대회를 석권하며 무술가로서 이름을 떨쳤다.

이처럼 뛰어난 무술 실력에 수려한 외모까지 지닌 그를 영화계가 그냥 놔두지 않았다. 이연걸은 '취권' 등 무술 영화가 전성기를 누리던 당시 조류에 편승해 '소림사'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이 영화 한편으로 이연걸은 그야말로 스타가 되었다. 실제 소림사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중국 무술대회를 5연패한 19세의 어린 소년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전세계 화교권의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무술 외에는 잘하는 게 없었던 이연걸은 무술 영화가 쇠퇴의 기로에 서면서 소림사 세 편을 끝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1984년 '무술발전공사' 라는 회사를 설립, 무술 보급과 의료보건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던 이연걸은 공산주의 체제의 벽에 부딪친다. 영화출연마저 간섭을 받게 되자 그는 중국 탈출을 결심, '소림사2' 와 '소림사3'에서 함께 공연했던 황주연과 결혼하여 88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이연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미국에 도착한 이연걸은 곧 영화 제작에 착수를 한다. 그러나 그가 직접 제작, 주연을 맡았던 '중화영웅' 과 '풍운인물' 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하고 만다. 어렵게 고향을 떠나 이국 땅까지 왔건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난뿐이었다.

미국에서의 잇따른 실패로 인해 이연걸은 어느새 영화팬들에게 잊혀진 존재가 되고 만다. 이때 그를 구해낸 이가 바로 '천녀유혼'으로 널리 알려진 홍콩 출신의 서극 감독이다.

동양의 스필버그라고 불리우는 서극 감독은 주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이연걸을 그의 새 영화 '황비홍' 에 캐스팅한다. 중극 근대사의 신화적 무술인인 황비홍은 이연걸이 출연하기 이전 무려 50여편의 영화에서 다룰 정도로 중국인들에게는 영웅 그 자체였다. 그만큼 이연걸에게는 부담이 가는 영화였다. 한마디로 기존의 수많은 황비홍과 대적해야 할 상황이었다.

황비홍은 대성공이었다. 실제 무술을 바탕으로 한 이연걸의 액션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크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황비홍'으로 이연걸은 영화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되찾게 되었다.

곧이어 이연걸은 다시 서극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동방불패'에 출연한다. 조금은 황당한 설정과 액션이 어우러진 '동방불패'는 아시아권에서 폭발적인 성공을 거둔다. 연타석 홈런을 친 이연걸은 이후 출연한 영화 '황비홍3', '동방불패2', '태극권' 등이 흥행에 성공하여 홍콩 영화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정통 무협극에서 성공을 거둔 이연걸은 자신의 영화 배경 설정을 과거에서 현대로 바꾸게 된다. 배우로서 새로운 시도인 셈이다. 이 시기에 발표한 영화로 '이연걸의 보디가드', '정무문', '영웅' 등이 있다.

이 영화에서 이연걸은 주로 경찰 특히 중국의 공안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미국 영화의 노골적인 모방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했지만, 이런 관점보다는 홍콩의 중국 반환을 염두를 두고 대륙 본토에 보내는 홍콩인들의 우호적인 표현이라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

비평가들의 비평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중국 본토 출신인 이연걸은 중국 공안의 역할로 중국 정부로부터 대단한 신임과 호의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인들의 장점을 보여주려는 이연걸의 의도가 그의 영화에 담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에서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다진 이연걸은 다시 한번 미국 헐리우드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이미 한번 실패를 한 경험이 있는 이연걸로서는 매우 신중했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 왔다.

그에게 프로포즈를 한 영화는 '리셀웨폰 4'.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배역은 주연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제까지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역을 맡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악역. 이 영화에서 악역을 맡는다는 소문이 나자 아시아 영화계는 한동안 시끄러웠다. 정의의 수호신 이연걸이 악당이 된다는 것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1998년 멜깁슨의 영화 '리셀웨폰 4' 는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더불어 이 영화의 주연을 맡았던 멜깁슨의 주가도 수직 상승했다.


조심스럽게 헐리우드에 발을 디딘 이연걸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연걸은 한마디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스피디한 몸놀림, 실제 무술에 기반을 둔 액션, 깔끔한 마스크. 영화에서의 주인공은 멜깁슨이었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이연걸이 주인공이었다.

'리셀웨폰 4'의 성공으로 미국 무대에서 신고식을 치른 이연걸은 곧이어 '로미오 머스트 다이(Romeo Must Die)' 에 출연한다. 이번에는 악당이 아니라 그의 본래 캐릭터인 정의의 수호신으로 그것도 주연으로. 그리고 2000년 5월 개봉한 '로미오 머스트 다이(Romeo Must Die)'는 흥행의 가도를 달리고 있다.


무술가로 시작하여 영화배우로 성공한 이연걸. 이소룡 사후 최고의 정통 무술 액션배우로 손꼽히는 그는 무술이 바로 자신의 인생의 밑거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아직도 매일 무술을 통해 자신을 가다듬는다는 그는 무술가이자 영화배우로서 남기를 바라고 있다. '리셀웨폰 4'의 도너 감독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이연걸은 겸손하고 스마트하다. 그의 쿵푸는 무술이라기보다 예술에 가깝다

출처 : 중국진식태극권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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