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그 야속한 질병

당뇨병/기타 2012. 3. 24. 22:32



최근에 내 진료실을 찾아온 A씨는 40세 남성이다. 최근 몸이 붓고, 기운이 없는 등, 전에 느껴보지 못한 증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하소연 했다. 퇴근 시간에 임박해서 진료실로 찾아 온 A씨는 15년 전인 20 대에 당뇨를 발견했으나 체중 조절, 음식 조절만으로 당뇨를 조절해 왔다. 4-5년 전 두 번의 교통사고를 당해서 입원 치료하는 중에 혈당이 많이 높아서 치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으나 “겁이 나서” 치료하지 않고 환자 나름대로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조절 중이라고 했다.

20대 중반까지 프로 운동선수로 활약한 A씨는 본의 아니게 은퇴하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심적으로 매우 힘들었고, 체중도 70 Kg 대에서 110 Kg까지 급격히 늘었다고 했다. 이때 당뇨로 진단을 받았다. 당뇨로 진단을 받은 후에도 모친에게만 본인의 당뇨를 알리고 심지어는 부인에게도 알리지 않고 외롭게 당뇨 조절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내 원 당시 창백한 얼굴에 다리가 부어 있었고, 혈압 180/110 mmHg, 혈당은 522mg/dL로 매우 높았다. 당뇨에 의해서 신장합병증이 발생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당뇨병과 합병증의 가능성을 설명한 후에 자세한 검사를 위하여 다음날 공복에 병원에 다시 오도록 권유하고 A씨도 동의하였으나 다시 오지 않았다.

당뇨는 먹은 음식이 분해되고 당분으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혈액 안으로 유입된 당분이 정상 범위를 넘어가지 않도록 조절해 주는 인슐린의 생산과 분비가 부족하거나 (제 1형 당뇨병), 인슐린이 생산되어도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경우 (제 2형 당뇨병: 이 때는 인슐린이 있어도 제 기능을 못한다) 혹은 이 두 가지가 혼합된 경우 (혼합형) 생기는 질환이다.

당뇨병은 음식물 섭취 후 흡수한 당분이 혈액에는 넘쳐나도 필요한 몸에서는 쓸 수 없는 상황으로 자동차에 비교하면 연료는 계속 공급하고 있으나 모터에서 연료를 계속 흘리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모터에는 연료 공급이 부족해서 운행하기 어렵고, 모터 주위와 기타 중요한 부위에 기름이 범벅이 되어서 자동차가 망가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당뇨 환자에서도 자동차의 경우와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는데 섭취한 음식이 몸에서 필요한 곳에서 쓰이지 못해서 몸은 쇠약해 가고, 혈액 안에는 당이 높아서 눈, 신장, 심장, 혈관 등에 합병증을 유발한다.

성인에서 발생하는 당뇨병은 인슐린 생성은 정상이거나 혹은 오히려 많은데 인슐린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 제 2형 당뇨병이 흔하다. A씨의 경우에도 심한 스트레스와 급격한 체중 증가에 의한 인슐린 감수성 장애가 초기 당뇨병 발병의 원인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에는 체중 조절과 적당한 운동으로 어느 정도 인슐린 감수성 장애가 조절되고 혈당도 조절되었겠지만, 인슐린에 감수성이 취약한 체질은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고, 시간이 감에 따라서 인슐린 생산과 분비능력이 점차 감소했을 가능성도 많다.

실제로 많은 제 2형 당뇨병 환자에서 초기에는 인슐린 생산과 분비가 정상인부다 오히려 많다가 세월이 감에 따라 인슐린 생산과 분비가 감소해서 어느 시점에는 인슐린 부족증인 제 1형 당뇨와 비슷하게 진행한다. 따라서 자가 치료만으로 식이요법과 운동만으로 조절하는 자가치료로는 당뇨의 진행과정을 알 수 없으므로 치료가 제대로 되는 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초기에 약물 치료를 하지 않는 경우에도 주치의를 정해 놓고 정기적으로 검사하면서 당뇨가 어떻게 진행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병은 알리고 약은 먹어야 한다.”는 속담이 있다. 특히 당뇨병은 평생토록 식이요법과 운동이 필요한 “생활습관병”이므로 생활을 같이 하는 가족의 관심과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질병이다. A씨같이 배우자에게도 숨기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A씨와 상담 중에 환자의 당뇨병에 대한 인식이 아직도 거부감이 많은 점이 안타까웠다. A씨의 혈당이 매우 높고 부종과 고혈압이 동반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대로 방치하면 투석 치료가 필요한 말기 신부전증으로 빠르게 진행할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런 중대한 합병증으로 진행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혈당 조절, 고혈압치료, 신장 합병증 진행을 지연시키기 위한 약물치료 등이 꼭 필요하다. 방치하면 1년 이내에 완전히 신장 기능을 잃을 수도 있으나 치료해서 3년 혹은 5년 후까지 신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면 성공적인 치료가 아니겠는가?

A씨가 본인에게 맞는 의사를 만나서 A씨에 가장 맞는 치료를 받길 기원한다. 외면하면 더 집요하게 거칠게 달라 붙는 것이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이다. 어차피 내게 온 손님 (질병)이고 떠나가지 않는다면, 그 존재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만성 질환은 불청객이나 평생을 나와 같이 가는 떨어지지 않는 손님이다. 옛말에 “골골 80” 이라고 했다. “병치레 많은 사람이 80가지 장수한다”는 뜻이다. 평균 수명이 80세인 세상에 “80이 대수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병치레하면 서 건강을 돌보면 장수한다”는 뜻이니까 “미리 미리 치료하면 더 큰 화근을 막는다”는 뜻이다. A씨의 당뇨도 여기에 해당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혼자 힘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질환이 당뇨이다. 또 자각하지 못하는 동안 중한 합병증이 슬쩍 시작되는 무서운 질환이기도 하다. 혼자 상대하기는 버겁고 야속한 당뇨를 믿을만한 의사와 같이 꾸준히 치료하면 건강도 유지될 수 있다. 이럴 때 도우라고 의사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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