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방송 오늘의 법문 녹취

녹취록/기타 2012. 7. 9. 22:32


  부처님의 본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그런데 깨달음이후의 부처님을 붓다라고 우리는 부릅니다. 붓다라는 이름은 본래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다 깨어나다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유래한 명칭입니다. 원래의 의미는 잠에서 깨어나다라는 말이지만 수행의 측면에서 보면 무명이라는 어두운 상태에서 깨어난 분이라는 존칭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고 얼마되지 않아 길을 가다가 한 바라문을 만났습니다. 그는 부처님께서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고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은 신입니까?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나는 무명이라는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다. 즉 붓다라고 답하신 것입니다. 잡아함경에 있는 이야깁니다. 모든 생명은 그 방식이 어떠하든 반드시 잠을 잡니다. 잠은 생명을 유지하고 활력있는 생활을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사람은 대개는 밤에는 잠을자고 아침이면 깨어납니다. 그런데 무명이라는 어둠에 묶여있는 중생들은 좀처럼 깨어날 줄 모릅니다. 언제까지나 탐욕과 쾌락 명예라는 꿈에 사로잡혀 일어나기를 피합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설한 가르침은 바로 이꿈에서 깨어나는 길입니다. 헛된 욕망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수 있는 명철한 지혜를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밝히면 사물의 윤곽이 분명하게 드러나듯 밝은 지혜로 무명이라는 잠과 꿈을 깨우는 것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라면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속에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오늘의 법문 녹취

녹취록/기타 2012. 7. 5. 22:31


  내일을 위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데는 편안한 잠만큼 중요한게 없습니다. 잠은 하루의 번잡한 일상에 찌든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고 지친몸을 쉬게 해줍니다. 세간의 삶을 영위하는 사람도 참된 나를 찾아가는 수행자도 적절하고 편안한 잠을 자지 않으면 어떤것도 할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전하며 다니시던 어느날 숲속에서 떨어진 나뭇잎 더미에서 주무신적이 있습니다. 다음날 아침 한 바라문이 찾아와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날은 춥고 바닥은 수레가 다녀 울퉁불퉁하며 가사는 얇아 세차게 부는 바람을 막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편히 주무신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잘지어진 저택에 사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탐욕으로 인한 육체적인 열기와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타오르는 불길에 시달린다면 그는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모든 악을 여의고 감각적 욕망에 시달리지 않는 바라문, 모든 갈애를 끊고 마음의 근심을 잠재우고 고요한 마음을 가진 이는 평온한 잠을 잘 잘것이다. 알라와까경의 이야깁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잘지어진 집에 산다할지라도 마음의 갈증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그 열기로 인해 육체적인 편안함도 취할수 없습니다. 수행도 마찬가집니다. 좋은 스승과 좋은 가르침이 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마음속의 번뇌와 갈증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결코 평온하고 바른 길을 갈 수 없습니다. 편안한 잠으로 마음과 몸을 쉬게하고 다음날의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것처럼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을 가지고 수행에 정진할때 고통으로 가득찬 세상에서도 편안함을 이룰수 있는 법입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속에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녹취록/신행365일 2012. 7. 4. 21:37


 

  안녕하세요? 김용림입니다.
  신행365일 오늘은 유교경에 나오는 말씀 들어보시겠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소의 힘이 얼마만한가를 헤아려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그 힘을 다하게 하지 않는다."

  대지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노벨 문학상의 작가 펄벅이라는 분이 계시죠. 이분이 60년대에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했을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요. 기차를 타고 한국을 여행하던 중에 우연히 창너머로 소달구지를 끌고가는 한 농부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죠. 그런데 의아하게 여긴것이 소달구지에만 짐을 실은 것이 아니라 그 소를 끄는 농부의 지게에도 짐이 실려 있더라는 것이죠. 그렇다고 달구지에 더 실을만한 자리가 없는 것도 아니고 미국인의 상식으로는 소달구지를 두고서 구태여 자기등에 까지 짐을 지고가는 농부의 심중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저 농부는 왜 소를 두고 저렇게 힘들게 짐을 지고 가죠? 물었다는데요. 아 소가 너무 힘들까봐서 거들어주는 겁니다. 라는 수행원의 설명이 그랬다죠. 이 한장면으로 나는 한국에 와서 볼 것을 다 보았습니다. 네 그후로 한국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지극했다고 전해지는데요. 글쎄요. 바로 이런 마음 아니겠습니까? 나혼자 좋자고 남이야 죽든살든 아랑곳 없는 태도 나만 잘되면 좋고 남은 잘되면 큰일나는 줄 아는 놀부 심보 내이익을 위해서는 남에게 해가되고 상처가되도 괜찮다는 착각 세상사는 이치로 보아도 선인들의 지혜를 통해서도 괜찮지 않다 하는 것이 오랜경험끝에 얻어지는 삶의 지혜 아니겠습니까? 혼자보는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네 오늘 신행365일 유교경의 말씀 다시한번 새기시면서 모두는 한배를 탄 공동 운명체라는 사실 잊지말고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소의 힘이 얼마만한가를 헤아려 너무 무거운 짐을 지워 그 힘을 다하게 하지 않는다."

'녹취록 > 신행365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7.15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7.12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13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08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06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오늘의 법문 녹취

녹취록/기타 2012. 7. 3. 21:58


  우리가 살고있는 세계는 그야말로 갈등과 다툼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마다 목적하는 것이 다르고 제목적을 이루기 위한 주장이 다르니 당연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가 나름대로 건강함을 유지하고 사회구성원들이 제몫을 하고 살아갈수 있는 것은 화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극단적으로 사회전체가 나뉜시대는 없었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이익에만 몰두하기 때문입니다. 서로에 대한 작은 이해와 배려가 절실한 시대입니다. 부처님 당시 사소한 의견차이로 승단에 다툼이 일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차례 화해를 하라고 권했지만 그들은 서로가 잘못했다며 화해하지않고 대립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의 어리석음을 꾸짖으며 홀로 숲속으로 들어가 3개월동안 홀로 안거에 드셨습니다. 안거를 마치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사려깊고 함께 길을 갈만하며 훌륭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벗을 만난다면 그와 함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며 즐겁게 수행하며 살아가야 하리라.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어리석은 무리와 벗하느니 홀로 살아가는 것이 더 낫다. 코삼비 자타카의 이야깁니다. 사람은 어떤 형태로든 공동체를 이뤄 다른이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런 공동체를 원만하게 유지해주는 것은 바로 화해라는 융합입니다. 그러나 공동체 구성원이 저마다 자신의 입장만 내세우며 서로 자신의 입장과 다르다고 해서 완전히 배척하며 지낸다면 그 공동체는 없는 것보다 못합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 속에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오늘의 법문 녹취

녹취록/기타 2012. 6. 21. 22:09


  주위를 돌아보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제나 온화하고 부드러운 말로 다른이들을 기분좋게 해줍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밝은 얼굴로 모든 이들을 대합니다. 모든일에 솔선수범하며 어려운 일도 피하지 않고 다른이들을 위해 희생할줄 아는 사람입니다. 세간의 삶의 기준으로 보면 이런 이들이야말로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누구나 그와함께 있으면 행복해하고 다른이들에게도 그러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자극을 주니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불자들의 기준으로 보면 여기에 한가지가 더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평화롭고 바른길을 가기위해 부처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니가잘라경에서는 불자들이 참된 행복으로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바른 신행생활을 해야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친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며 누구나 그를 좋아하며 함께 사는 것을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부처님 가르침을 듣지 않고 마땅히 정진해야 하는 수행도 하지 않으면 늘 부처님 법을 들으며 번뇌로 부터 벗어나는 해탈을 얻지 못한다. 그런이들은 수명이 다해 육신이 무너지면 다시 번뇌에 사로잡혀 윤회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경에서는 불자들이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수행과 정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는 것을 바른 덕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간의 삶에서 덕이 높은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불자들이 쌓은 덕이 없다면 또다시 중생의 길을 반복해야 합니다. 번뇌와 고통에서 영원히 벗어나서 참되 해탈의 길 생명의 길을 가기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른 신행생활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는 법입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속에 행복한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녹취록/신행365일 2012. 6. 13. 21:52


  안녕하십니까? 김용림입니다.
  신행365일 오늘은 대반열반경에 나오는 말씀 들어보시겠습니다.

 

  "인연따라 생긴 것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막을수도 없느니라. 한번 모인것은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니 이 몸또한 내소유가 아님을 알라."

 

  사람이든 사물이든 세상에 한번 생겨난 이상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게 부처님께서 발견하신 이 세상의 이치지요. 그런데 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불자라고 해서 뭐 딱히 다른것도 아니거든요. 늘상 들어서 익히 안다고 하면서도 좀처럼 실감하지 못하면서 사는 것이 바로 이 무상의 진리가 아닌가 싶어요. 얼마전에도 아는 불자님들이 몇분 모인 자리에서 그런얘기가 나왔어요. 사실 저의 나이 정도 되면은 몸이 되든 마음이 되든 온전한 건강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꼭 내일이 아니더라도 한집걸러 한집정도는 늘 우환이 있게 마련입니다. 남편이 됐든 부모가 됐든 오랜세월을 함께한 가족 한사람이 병이 나게 되면은 다른 건강한 가족들 역시도 물심양면으로 어렵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연세 지긋하신 불자님 한분이 그러세요. 아이고 사람은 늙고 병들면 빨리 죽어야지 오래 살아봐야 가족들 고생이야. 처자식은 무슨 죄가 있어서 맥이랴 치우랴 씻기랴 그 고생을 시키냐구. 네 하하 세상일이 모 내 마음먹은대로 되어지던가요. 원하지 않아도 해야하고 하고 싶어도 할수 없는 것이 인생살이 아닐까요. 나만은 아닐거라는 생각, 나만은 예외일거 같은 착각. 글쎄요 이런 눈먼 착각때문에 인심은 더 팍팍해지고 삶은 더 고통스러워진다고 하는데요. 어떻습니까? 오늘 신행365일 부처님 말씀 다시한번 새기시면서 세상과 이웃을 거울삼아 나를 비추는 지혜롭고 자비로운 보살이 되시길 바랍니다.

 

  "인연따라 생긴 것은 바뀌고 변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막을수도 없느니라. 한번 모인것은 반드시 헤어지게 마련이니 이 몸또한 내소유가 아님을 알라."

'녹취록 > 신행365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7.12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7.04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08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06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5.23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오늘의 법문 녹취

녹취록/기타 2012. 6. 12. 21:48


  농사를 짓는 농부들은 반드시 들에 자라는 잡초를 제거합니다. 잡초들을 그냥두면 그 자리에 길러야 하는 곡식들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좋은 씨앗을 골라 뿌리고 정성껏 가꿈으로써 가을이 오면 풍성한 수확을 거둡니다. 불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수행을 하면서 무엇을 버려야 하고 어떤 것을 끊어내야 하는지에 대해 먼저 기준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참된 즐거움과 결과적으로 나를 해치게 되는 일시적인 쾌락에 대한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면 바른 수행에 정진할 수 없습니다. 이다나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이에대해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비구들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이 업을 일으키는 원인이다.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으로 만든 업은 자신이 저지른 바로 그자리에서 익어간다. 그리고 그 업이 익어가는 그자리에서 업의 결과를 맞이하게된다. 비유하자면 씨앗을 비옥한 토지에 심은뒤 적절한 비가 내리고 햇빛을 받아 야자수가 자라나는 것과 같다. 바로 우리들이 저지르는 탐욕과 분노는 어리석음으로 인해 겉잡을수 없이 크게 자라는 야자수처럼 업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바른 수행자는 업의 씨앗을 먼저 제거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고 하더라도 불에 태워 재를 만들거나 비옥한 토지가 아닌 물에다가 심는다면 절대 자라날수가 없는 것처럼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이라는 씨앗을 먼저 제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업이 자라날 좋은 여건이 되는 마음을 청정히 해서 도저히 자라날수 없도록 스스로를 갈고 닦아야 합니다. 바른길을 가는 불자라면 잠시라도 틈을 주면 일어나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자라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속에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녹취



오프닝

  매주 일요일, 빠지지 않고 법당을 찾는 7살 민주는 늘 당당합니다. 그리고 늘 밝은 미소를 보내죠. 또 이제는 다 컸다고 가끔 볼멘소리도 내뱉고 자기 주장도 펼칩니다. 그렇게 7살 민주는 한살 한살 그렇게 나이를 먹으며 또 세상과 소통하며 자기 목소리도 내며 남의 목소리도 들어주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나겠죠. 밝고 씩씩한 민주의 미래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여법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바로 자라나는 민주를 위한 우리들의 자세가 아닌가 싶습니다.


뜰앞의 잣나무

  겨울이면 옷을 많이 껴입고 여름이면 그 옷을 하나하나 벗어 버립니다. 옷을 많이 껴입으면 추위를 이겨낼수 있고 그 옷을 벗어버리면 더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모두가 그렇게 하죠. 그렇습니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무딘일은 그렇게 하지를 못하죠. 그것은 내 마음이 진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탐진치 삼독이 나의 길을 막는 것은 어느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 내탓이죠. 그런데 나는 그렇지 않죠. 나는 있지만 나가 없는 것은 나속에 내 마음이 여기 있기도 하고 저기 있기도 하기 때문인데요. 이 몸은 절대 나가 아닙니다. 내 마음이 나입니다. 다시 말해서 내 의식이 나라는 말이죠. 몸은 내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게도 하고 불행하게 하기도 합니다만 내 마음에 변화가 없다면 나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행복함과 불행도 없곘죠. 세상은 변함없이 그대로 그렇게 있는데 왜 우리들은 바람이 깃발을 흔든다고 생각하고 깃발이 저절로 흔들린다고 생각하고 있을까요?


명상의 시간

  누군가가 좋아서 내가 가지고 있는 무엇이든지 다 주고싶습니다. 그럴땐 세상엔 아무런 괴로움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원망스럽고 미움이 가득차서 눈길조차 주기 싫습니다. 그럴땐 세상의 모든 것이 괴로움입니다. 마음속엔 나 하나인데 내 마음속의 변화는 여러가지입니다. 그런 나 에게서 벗어나 봅니다. 나라고 집착해서 밉다 곱다 이쁘다 사랑스럽다를 반복하는 나에게서 벗어나 봅니다. 그곳엔 오직 참된 나가 있을 뿐입니다. 있다고 할수도 없다고 할수도 없는 나 , 나,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진정 누구일까요?


클로징

  무례한 사람의 행위는 나의 행실을 바로 잡게 해주는 스승이다. 무례한 그 누군가의 말과 행동으로 혹시 불편한 마음은 없으셨습니까? 공자께서 하신 이 말처럼 불쾌함 보다는 내 마음의 스승으로 삼아 더욱 나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을 키워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오늘의 법문 녹취

녹취록/기타 2012. 6. 9. 21:51


  훌륭한 스승과 올바른 가르침이 바른 수행의 조건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동등하게 그런 조건을 갖추고도 수행에 진척이 없는 사람도 있고 바른길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기라나경을 통해 환자의 회복에 비유해 올바른 수행에 관한 설법을 하고 계십니다. 기라나경에서 환자가 회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적절한 약과 음식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설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절한 약과 음식 의사가 있어도 병을 대하는 환자의 태도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는 여래를 만나 여래가 설한 법과 율을 듣고 바른법에 대한 확신을 가져 아라한과에 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여래의 설법을 듣고도 그렇지 못한이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기라나경의 가르침처럼 사람은 누구나 병을 갖고 있습니다. 한번쯤 병원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평소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자기관리를 아무리 잘하는 사람도 감기에 걸릴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여건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마음이 아픈일을 반드시 겪게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육체적인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마음의 병을 얻을수도 있습니다. 살아가면서 겪는 모든 상황이 우리가 이겨내야 하는 병과 같습니다. 그러나 병을 이겨내는 적절한 음식과 약 병의 회복을 도와주는 의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회복되고 어떤 사람은 끝내 병에 굴복하고 마는 것처럼 수행의 길도 같은 과정을 겪게 됩니다. 여래가 설한 바른 법과 율에대한 스스로 확신을 갖지 못한다면 결코 불자로써 바른길을 갈 수 없습니다. 오늘도 부처님 가르침속에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설정

트랙백

댓글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녹취록/신행365일 2012. 6. 8. 22:18


  안녕하세요? 김용림입니다.
  신행365일 오늘은 법구비유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마땅히 할일을 하지 않고 해서는 안될일을 즐거이 하여 마음에 따라 제멋대로 행하니 나쁜 버릇은 날로 자라난다."

  종교가 있든없든 자식을 가진 부모들 마음이야 다 똑같죠. 내아이만큼은 착하고 바른아이였으면 늘 건강하게 별탈없이 자랐으면 하는 마음. 뜻하는대로 좋은 학교 가고 성공적인 직장생활에 좋은 배우자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를 바라는 마음. 아마 그런 각자의 바램들이 있어서 기도를 하고 절을하고 복을 비는 것이겠죠. 하지만 이런 기도가 본래의 그 순수한 본질을 잃어버리고 때로는 화가되고 원망이 되어 되돌아 올때가 종종 있습니다. 가까운 우리 불자님들중에 그런분이 계세요. 아이고 내가 백일동안 백팔배도 해보고 일년내내 참회기도도 했는데 아이가 달라지는 것이 없어요. 여전히 대들고 반항하고 도대체 내가 어떻게 해야 애가 바른 사람이 될까요? 네 우리속담에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나는 과연 내가 바라는 그런 사람으로 살았던가? 스스로 먼저 자신을 비춰봐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왜 아이들 특징이 따라하기라고 하잖습니까? 아이는 부모가 하는 말이 아니라 그 행동을 보고 따라한다고 하죠. 나는 밭에다 콩을 심어놓고 팥이 나기를 기다린다면은 그야말로 인과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의 욕심일 뿐입니다. 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늘 남이 아닌 나를 다스리고 습관을 길들이는 수행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오늘 신행365일 부처님 말씀 다시 들으시면서 기대이전에 먼저 스스로를 비춰보는 눈밝은 수행자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마땅히 할일을 하지 않고 해서는 안될일을 즐거이 하여 마음에 따라 제멋대로 행하니 나쁜 버릇은 날로 자라난다."

'녹취록 > 신행365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7.04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13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6.06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5.23
불교방송 신행365일 녹취  (0) 2012.04.30


설정

트랙백

댓글